정체와 생김새
그슨새는 제주도에서 전하는 요괴의 이름이다. 국립국어원의 우리말샘은 이 말을 제주 방언으로 올려, 어두운 밤에 아무것도 없는데 있는 것처럼 잘못 보이는 것, 곧 표준어 어둑서니에 해당하는 낱말로 풀이한다. 사전만 놓고 보면 그슨새는 특정한 괴물이 아니라 밤의 착각 그 자체를 부르는 이름인 셈이다.
그런데 오늘날 널리 퍼진 설명은 이보다 훨씬 구체적이다. 그슨새는 주젱이라 부르는 제주식 도롱이를 머리부터 뒤집어쓴 채 길거리를 어슬렁거리며, 밤이 아니라 낮에 나타나 사람 속의 불안과 두려움을 부풀려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 설명에서 그슨새는 얼굴을 보여 주지 않는 짚 옷 더미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남성적인 기운이 강한 요괴로 소개된다.
이름의 뜻에 대해서는 사악한 기운이나 액을 뜻하는 말과 옳지 못하다는 뜻의 말이 합쳐진 이름, 곧 못된 귀신이라는 풀이가 제시되어 있으나 확실한 어원은 밝혀지지 않았다. 이름이 비슷한 그슨대와 마찬가지로 그슨이라는 말이 그늘이나 그을음과 통한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정리하면 그슨새는 방언 사전에 실린 짧은 뜻과 최근에 덧붙은 요괴로서의 설정이 함께 전해지는, 두 겹의 존재라 할 수 있다.
전해 오는 이야기
제주의 옛 어른들에게 그슨새는 긴 줄거리를 가진 이야기의 주인공이라기보다, 어스름한 길에서 마주치는 정체 모를 형체를 부르는 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대에 퍼진 이야기에서는 그슨새를 만난 사람의 마음속에서 걱정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고 한다.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육용 위키는 그슨새가 사람 속의 불안감과 공포감을 부풀려 스스로 목을 조르게 한다고 소개한다. 그래서 그슨새는 칼이나 몽둥이가 아니라 마음을 파고드는 요괴로 이야기된다.
한편 조선 시대 야담집에 실린 저승손님 이야기처럼 사람을 스스로 죽게 이끄는 귀신 이야기와 그슨새를 견주기도 한다. 그러나 방법과 배경이 서로 달라 직접 이어지는 전승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슨새 이야기의 세부는 대부분 20세기 말 이후 요괴를 소개하는 글에서 살이 붙은 것으로 이해하는 편이 안전하다.
문헌 속 기록
그슨새는 조선 시대 문헌에서 이름이 확인되지 않는다. 확인되는 가장 이른 자료는 20세기 후반의 제주 방언 조사이며, 이것이 국립국어원 우리말샘에 제주 방언 낱말로 실려 어둑서니의 뜻으로 풀이되어 있다. 곧 그슨새의 뿌리는 어둠 속의 헛것을 부르는 말에 있다.
도롱이를 쓰고 낮에 다니며 불안을 부추긴다는 설정은 2000년대 이후 한국 요괴를 정리한 책과 인터넷 글, 그리고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교육용 위키 같은 곳에서 소개되면서 널리 퍼졌다. 이들 자료는 그슨새를 그슨대와 구분하여 그슨대는 밤의 그림자 귀신, 그슨새는 낮의 도롱이 요괴로 설명한다. 다만 이런 설명의 원 출처가 어느 채록 자료인지는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지 않아, 옛 전승과 현대 창작의 경계가 흐릿하다.
막는 법과 민속
그슨새를 막는 방법은 따로 전하는 것이 많지 않다. 방언의 뜻 그대로라면 그슨새는 밤의 착각이므로, 불을 밝히고 눈을 비비면 사라지는 것이 곧 막는 법이다. 그슨새가 어둑서니와 같은 말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어둑서니는 올려다볼수록 크다'는 속담처럼 겁먹을수록 커 보이는 것이니, 놀라 달아나기보다 차분히 다시 보는 편이 낫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이 사전이 참고한 현대의 소개 글에도 그슨새를 막는 방법은 따로 제시되어 있지 않다. 그슨새에게 제사를 지내거나 부적을 붙였다는 민속은 확인되지 않는다.
제주에는 도깨비를 영감이라 부르며 모시는 신앙이 있으나 그슨새는 이런 신앙의 대상이 된 흔적이 없다. 굿의 사설이나 본풀이에서도 그슨새라는 이름은 확인되지 않는다. 그만큼 그슨새는 모셔서 달래는 신이 아니라, 어스름한 날 마주치는 두려움에 붙인 이름이라 할 수 있다.
비슷한 존재와 구분
가장 자주 혼동되는 것은 그슨대다. 둘 다 제주 방언에서 나온 이름이고 어둠과 관련되어 있으나, 그슨대는 컴컴한 밤에 큰 모습으로 나타나 사람을 해치는 귀신으로 풀이되고 그슨새는 어둑서니에 해당하는 헛것으로 풀이된다. 현대의 요괴 소개 글은 이를 밤의 그슨대와 낮의 그슨새로 나누어 설명한다.
어둑시니는 표준어 어둑서니와 같은 말이므로 사전상으로는 그슨새와 가장 가까운 존재다. 다만 어둑시니가 어둠 속에서 점점 커진다는 이야기로 알려진 데 비해, 그슨새는 도롱이 차림과 낮의 활동이라는 전혀 다른 그림으로 굳어졌다. 도깨비는 사람과 씨름하고 어울리려 드는 데 비해 그슨새는 말없이 곁에 서서 마음만 흔든다는 점에서 훨씬 음침하다.
지금의 모습
그슨새는 2010년대 이후 웹툰과 게임, 요괴 도감류 책에서 도롱이를 뒤집어쓴 얼굴 없는 형체로 자주 그려진다. 짚 옷 아래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거나 눈만 희미하게 빛나는 모습이 흔하다. 등장인물의 우울과 불안을 시각화하는 장치로 쓰이는 경향도 있다.
인터넷에서는 그슨새가 사람을 자살로 몰아간다는 설정 때문에 마음의 병을 상징하는 요괴로 이야기되기도 한다. 이런 해석은 옛 방언의 짧은 뜻에서 한참 나아간 것이지만, 어려운 때 곁에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로 이어져 나름의 쓸모를 얻었다. 그슨새를 읽을 때는 사전에 남은 한 줄과 나중에 덧붙은 이야기를 구분해 보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