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magpie › 까치서고 › 요괴·귀신 사전 › 두억시니

두억시니

모질고 사나운 귀신을 뜻하는 우리말로, 역병을 옮기고 사람의 머리를 부순다고 전하며 오늘날 사전에서 야차와 같은 뜻으로 풀이하는 조선 시대의 악귀이다.

다른 이름: 두억신 · 야차(夜叉)

귀신조선전국전승상 위험도 ●●●●●

정체와 생김새

두억시니는 모질고 사나운 귀신을 이르는 우리말이다. 국어사전은 이 말을 야차(夜叉)와 같은 뜻으로 풀이하며, '겉은 순한 양 같으나 속은 두억시니 같다'는 용례를 싣고 있다. 죽은 사람의 넋이 아니라 처음부터 사람을 해치는 존재로 여겨졌기 때문에, 민속학에서는 도깨비와 함께 정체를 알 수 없는 잡신으로 분류한다.

이름은 '두억신'이 변한 것으로 설명된다. 두억의 뜻은 분명하지 않은데, 머리를 짓누른다는 뜻의 한자 두억신(頭抑神)에서 왔다는 풀이와, 역병으로 사람이 쓰러지는 소리를 흉내 낸 말이라는 풀이가 있다. 어느 쪽이든 '시니'는 신(神)에서 온 말이므로, 두억시니는 원래 귀신이라기보다 두려운 신령으로 불렸음을 알 수 있다.

생김새는 기록마다 다르다. 어떤 이야기에서는 더벅머리 아이의 모습으로 잔치에 끼어들고, 어떤 기록에서는 흉하게 일그러진 얼굴에 하늘을 날며 부하를 거느리는 무서운 존재로 그려진다. 뿔 달린 붉은 얼굴로 그리는 것은 야차나 일본 오니의 모습이 뒤에 덧붙은 것이다.

전해 오는 이야기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조선 후기 야담집에 전하는 잔치 이야기다. 어느 양반집 잔치에 더벅머리 아이 하나가 들어와 자리에 앉았는데, 아무리 쫓아내려 해도 꿈쩍하지 않았다. 화가 난 사람들이 아이를 때리고 욕보였으나 아이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다가 조용히 사라졌고, 얼마 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머리가 깨진 채 죽었다는 것이다. 두억시니가 '머리를 부수는 귀신'으로 기억되는 것은 이 이야기 때문이다.

16세기 말 큰 역병이 돌았을 때 사람들은 병을 옮기는 귀신을 두억시니라 불렀다고 전한다. 이때의 두억시니는 개인에게 붙는 귀신이 아니라 마을과 고을을 휩쓸며 사람을 무더기로 쓰러뜨리는 재앙의 신령이었다. 부적 글씨나 그림을 그려 붙인 문은 넘지 못한다는 이야기도 여기서 나왔다.

19세기의 기록에는 두억시니가 본래 억울하게 죽은 여종의 넋이라는 설명도 보인다고 소개된다. 사나운 잡신이 원귀로 다시 해석된 것으로, 시대에 따라 두억시니의 정체가 달리 이해되었음을 보여 준다.

문헌 속 기록

두억시니라는 이름은 조선 시대 여러 갈래의 문헌에 흩어져 나타난다. 최근 연구는 16세기 후반 역병을 다룬 글에서 가장 이른 기록을 찾고, 18세기 초 임방의 야담집 『천예록』에 실린 잔치 이야기, 18세기 후반 사전류에서 '추한 귀신'을 옮기는 말로 쓰인 예, 19세기 조재삼의 『송남잡지』에 적힌 유래담을 차례로 짚는다. 기록을 시간순으로 놓고 보면 두억시니는 역병의 신에서 머리를 부수는 귀신으로, 다시 원한 맺힌 넋으로 뜻이 옮겨 갔다.

18세기의 한어·만주어 대역 사전에서 두억시니가 흉한 귀신을 가리키는 번역어로 쓰였다는 점은 이 말이 당시 일상어였음을 보여 준다. 오늘날 표준국어대사전은 두억시니의 유의어로 야차(夜叉)를 싣고 있다.

20세기에 들어 두억시니는 구체적인 이야기를 잃고 '무서운 귀신'을 뜻하는 낱말로만 남았다. 현대 소설에서 '다리 긴 두억시니'처럼 바람 소리를 빗대는 표현으로 쓰인 예가 사전에 실려 있다.

막는 법과 민속

두억시니는 달래서 보내는 귀신이 아니라 막아야 하는 귀신으로 여겨졌다. 역병 귀신으로 이해되던 1577년 무렵에는 붉은 부적을 차거나 대문에 '海' 자를 붙이고, 흰 흙으로 문밖과 벽에 손바닥 모양을 그려 귀신을 막으려 했다고 전한다.

잔치 이야기의 교훈은 낯선 손님을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정체 모를 아이를 욕보인 사람들이 벌을 받았듯, 두억시니 이야기에는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한 예의가 곧 목숨을 지키는 길이라는 생각이 담겨 있다. 인터넷 글 가운데에는 두억시니를 잘 대접하면 재물이나 자식을 준다고 소개하는 것도 있으나, 출처가 분명한 옛 기록은 확인하지 못했다.

이름 자체가 욕이나 경계의 말로 쓰이기도 했다. 속이 험한 사람을 두고 '속은 두억시니 같다'고 하는 말이 그것으로, 귀신을 막는 방법 대신 귀신 같은 사람을 조심하라는 뜻으로 남았다.

비슷한 존재와 구분

야차는 인도 신화에서 온 불교의 귀신으로, 사람을 잡아먹는 사나운 존재이자 불법을 지키는 호법신이기도 하다. 오늘날 사전은 두억시니를 야차와 같은 뜻으로 풀이하지만 본래는 별개의 존재였고, 야차처럼 뿔과 송곳니를 가진 모습은 뒤에 덧붙었다. 일본의 오니와 비교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도깨비는 이름의 어감이 비슷하고 민속학에서 같은 잡신으로 분류되지만 성격이 전혀 다르다. 도깨비는 사람과 씨름하고 장난치는 존재인 반면 두억시니는 사람을 죽이는 존재다. 어둠 속 헛것인 어둑시니와는 이름 끝이 같고 밤길에 나타나는 그슨대와 함께 한 무리로 소개되곤 하나, 두억시니만이 역병과 죽음에 직접 이어진다.

지금의 모습

2000년대 이후 판타지 소설과 게임에서 두억시니는 한국식 괴물의 이름으로 자주 빌려 쓰였다. 야차의 이미지를 따라 뿔과 근육질 몸을 가진 거대한 요괴로 그려지거나, 머리를 부수는 야담의 설정을 살려 잔인한 괴물로 등장하는 경향이 있다.

한편 옛 기록을 다시 읽는 작가와 연구자들은 두억시니를 역병의 공포를 담은 존재로 새롭게 조명한다. 사나운 귀신 하나에 시대마다 다른 두려움이 겹쳐 쌓였다는 점에서, 두억시니는 한국 귀신 가운데 가장 뜻이 많이 변한 이름으로 꼽힌다.

참고한 자료

함께 읽기

이 글은 여러 전승과 옛 기록을 바탕으로 정리한 것으로, 지역과 시대에 따라 이야기가 다를 수 있습니다. 잘못된 내용이나 보탤 전승이 있으면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