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와 생김새
객귀는 집 밖이나 객지에서 죽은 사람의 넋을 이르는 말이다. 손님을 뜻하는 객(客) 자를 쓴 데서 알 수 있듯, 제집에 좌정하지 못하고 손님처럼 이곳저곳을 떠도는 귀신이라는 뜻이다. 국어사전은 객지에서 죽은 사람의 혼령, 또는 떠돌아다니는 귀신이라고 풀이하며, 민간에서는 객사귀라고도 한다.
옛사람들은 제집 안방에서 자손이 지켜보는 가운데 맞는 죽음을 온전한 죽음으로 여겼다. 그래서 길에서, 물에서, 남의 땅에서 맞는 객사는 몹시 불행한 죽음이었고, 그렇게 죽은 넋은 조상신이 되지 못하고 잡귀가 된다고 믿었다. 자살이나 타살, 물에 빠지거나 사고로 죽은 경우도 모두 객귀가 될 수 있다.
객귀는 정해진 모습이 없다. 이야기 속에서도 형체를 드러내기보다 사람에게 붙어 병을 일으키는 기운으로 나타난다. 객귀가 붙으면 갑자기 오한이 나고 입맛이 없어지며 배가 아프다고 하는데, 남자가 여자보다 더 심하게 앓는다는 말도 있다.
전해 오는 이야기
객귀 이야기는 영웅담이라기보다 병과 치료의 이야기다. 초상집이나 낯선 곳에 다녀온 뒤 갑자기 몸이 아프면 객귀가 따라붙었다고 여겼고, 집안 어른이 나서서 객귀를 물리는 의례를 했다. 안동 지방에서는 이렇게 하면 다음 날 첫닭이 울고 난 뒤 병이 낫는다고 믿었다.
객귀는 잔칫날이나 굿하는 날에도 몰려든다고 여겨졌다. 굿을 하면 부름을 받은 신뿐 아니라 초대받지 못한 잡귀들도 냄새를 맡고 모여드는데, 이들을 그냥 두면 신을 배웅한 뒤에도 남아 집안에 탈을 일으킨다. 그래서 굿의 마지막에는 반드시 이들을 먹여 보내는 절차가 있었다.
한편 객귀도 자손이나 마을 사람들이 정성껏 굿을 해 주면 조상이나 수호신으로 올라설 수 있다고 믿었다. 억울하게 떠돌던 넋이 마을의 신으로 모셔져 오히려 마을을 지키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여러 마을 당신 전설에서 볼 수 있으며, 나라에서 임자 없는 넋을 위해 지낸 여제도 같은 생각에서 나왔다. 대접받지 못하면 해치고 대접받으면 지켜 준다는 것이 객귀를 대하는 옛사람들의 기본 생각이었다.
문헌 속 기록
'객귀'는 민간과 무속에서 쓰던 말이어서 옛 문헌에 항목으로 정리된 예는 드물다. 조선 후기 이익의 『성호사설』은 명을 다하지 못한 귀신, 자손이 없는 귀신, 물과 불에 죽은 귀신 등 여귀의 종류를 두루 짚었는데, 객사한 넋을 잡귀로 보는 민간의 생각은 이러한 유교적 귀신관과 통한다. 임자 없이 떠도는 넋이 재앙을 부른다는 걱정은 나라에서 여제를 지내던 까닭이기도 했다.
객귀와 객귀물리기가 자세히 기록된 것은 20세기 들어서다. 1929년 조선총독부가 펴낸 무라야마 지준의 『조선의 귀신』은 전국의 귀신 신앙을 조사하면서 객귀와 그 퇴치법을 실었고, 광복 뒤 민속학자들은 객귀를 손각시, 몽달귀신, 영산과 함께 불행하게 죽은 사람의 넋, 곧 잡귀의 한 종류로 분류했다. 다만 객귀와 잡귀의 구별이 늘 뚜렷한 것은 아니다.
각 지역의 문화대전에는 안동, 청송, 대구, 성주 등지에서 조사된 객귀물리기가 실려 있다. 마을마다 바가지에 담는 음식과 외우는 주문이 조금씩 달라, 하나의 의례가 지역에 따라 어떻게 변주되는지를 보여 준다. 이런 기록은 대부분 20세기 후반에 마을 노인들에게서 들은 것이어서, 객귀물리기가 근래까지 살아 있던 풍속임을 알려 준다.
막는 법과 민속
객귀물리기는 객귀가 붙어 생긴 병을 고치는 민간 의례다. 바가지에 밥과 나물, 된장국 따위를 담아 환자의 머리맡에 놓고, 칼로 환자의 머리 위를 세 번 긁거나 십자를 그은 뒤 침을 세 번 뱉게 한다. 그런 다음 객귀에게 이것을 먹고 어서 멀리 물러가라고 큰 소리로 외치며 음식을 대문 밖에 쏟는다.
마지막에는 칼을 문 밖으로 던진다. 칼끝이 바깥을 향하면 객귀가 나간 것이고, 안쪽을 향하면 아직 남은 것이므로 다시 던진다. 이 의례는 무당이 아니라 집안의 주부나 이웃 어른이 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안동에서는 객귀에게 이웃 고을 부잣집으로 가라고 외치는 재미난 주문도 전한다.
굿의 끝에 잡귀들을 한꺼번에 먹여 보내는 뒷전도 객귀를 막는 예방책이다. 무당이 마당에 작은 상을 차려 나물과 떡, 술을 조금씩 나누어 던져 주고 칼을 밖으로 던져 떠났음을 확인하는데, 황해도에서는 마당굿, 동해안에서는 거리굿, 전라도에서는 중천멕이, 제주에서는 도진이라 부른다. 제주에서는 잡귀에 씌어 생긴 병을 고치는 잡귀풀이를 따로 하기도 한다.
비슷한 존재와 구분
객귀는 죽은 장소와 방식 때문에 생기는 잡귀다. 처녀로 죽어 생기는 손말명, 총각으로 죽어 생기는 몽달귀신이 죽은 이의 처지에 따라 이름 붙은 것과 구분되지만, 잡귀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서로 겹치기도 한다. 물에 빠져 죽은 물귀신은 객귀의 한 갈래로 볼 수 있다.
여귀는 제사 지내 줄 사람이 없는 넋을 나라와 고을에서 여제로 모신 것으로, 객귀와 성격이 가장 가깝다. 도깨비나 두억시니는 사람의 넋이 아니므로 객귀와 다르다. 저승사자는 넋을 데려가는 저승의 관리로, 객귀는 오히려 사자를 따라가지 못하고 이승에 남은 넋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의 모습
객귀물리기는 병원이 흔해지면서 거의 사라졌으나, 초상집에 다녀온 뒤 소금을 뿌리거나 집에 들어가기 전에 몸을 터는 습관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현대 공포물에서는 '객귀'라는 이름보다 원한을 품고 떠도는 악귀라는 넓은 뜻으로 쓰이며, 사람에게 붙어 병과 불운을 옮기는 성질이 강조된다. 객지에서의 죽음이 드물지 않게 된 오늘날에는 객사라는 말 자체가 옛말이 되어 가고 있다.
게임과 인터넷 이야기에서는 낯선 곳에 다녀온 뒤 무언가가 따라온다는 설정으로 변주되어, 바가지 밥과 칼 던지기 같은 옛 퇴치법이 규칙으로 쓰이기도 한다. 이름은 낯설어졌어도 '따라붙는 귀신'이라는 생각만은 오래 살아남은 셈이다. 칼끝이 바깥을 향해야 귀신이 나갔다고 보는 옛 판정법은 놀이의 규칙으로 옮기기에 알맞아 자주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