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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말명

혼기가 찬 처녀가 시집을 가지 못한 채 죽어서 된 귀신을 이르는 말로 손각시의 표준 표기이며, 또래 처녀에게 붙어 병과 불운을 일으키고 때로는 집안의 신으로 모셔지기도 한다.

다른 이름: 손각시 · 왕신 · 처녀귀신

귀신조선전국전승상 위험도 ●●●○○

정체와 생김새

손말명은 혼기가 찬 처녀가 시집을 가지 못한 채 죽어서 된 귀신이다. 국어사전은 손말명을 표준 표기로 삼고 손각시를 같은 뜻의 말로 올려 두었으며, 민간에서는 처녀귀신이라는 쉬운 말로 더 많이 부른다. 집안에 모셔 두고 달래는 경우에는 왕신이라고 한다.

이름의 뒷부분 '말명'은 무당이 모시는 신의 하나로, 죽은 무당의 넋이나 무당이었던 조상의 넋을 이르는 무속 용어다. 어원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신라 김유신의 어머니 만명(萬明)이 신령이 되어 말명으로 불렸다고 보는 풀이가 전한다. 앞의 '손'은 손님처럼 밖에서 찾아드는 존재를 가리키는 말로 풀이되기도 하나, 이 어원은 아직 확실하게 밝혀진 것이 아니다.

손말명은 정해진 생김새가 없다. 옛이야기는 모습보다 그 넋이 일으키는 일을 이야기하며, 나타난다 해도 죽을 때의 차림 그대로다. 흰 소복에 긴 머리를 풀어헤친 모습은 근대 이후 영화와 텔레비전이 만든 것이다.

전해 오는 이야기

손말명은 무엇보다 자기 또래의 혼기 찬 처녀를 노린다고 여겨졌다. 손말명이 붙은 처녀는 까닭 없이 앓거나 혼담이 번번이 깨져 시집을 가지 못한다고 했다. 시집가지 못한 원한이 시집가려는 처녀를 붙드는 것이니, 딸을 둔 집에서는 이를 가장 두려워했다.

왕신이 든 집 이야기도 전한다. 딸을 처녀로 잃은 집에서 그 넋을 마루 벽 선반의 단지나 상자에 모시고, 새 물건이 들어오면 먼저 바치며 집안일을 낱낱이 고했다. 식구 가운데 출가하는 사람이 있을 때 먼저 왕신에게 고하지 않으면 큰 화를 입는다고 믿었다.

경남 사량도 옥녀봉에는 옥녀의 원한 때문에 시집가는 신부가 가마에서 내려 봉우리 앞을 걸어서 지났다는 전설이 있다. 억울하게 죽은 처녀의 넋이 고을 원 앞에 나타나 한을 푸는 아랑 계통의 이야기와 그 뒤를 잇는 소설들은 처녀귀신 항목에서 자세히 다룬다. 이런 이야기에서 손말명은 사람을 해치는 존재이기 전에, 억울함을 알아줄 사람을 찾아 헤매는 존재로 그려진다.

문헌 속 기록

'손말명'이라는 낱말 자체는 옛 문헌보다 20세기의 사전과 민속 조사 보고서에서 확인된다. 반면 조선 후기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동국여지승람』을 인용해 김유신의 어머니 만명도 신령이 되었다고 적었고, 20세기 초 이능화는 『조선무속고』에서 이를 바탕으로 만명이 말명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풀이했다. 무당들은 놋쇠로 만든 둥근 명도를 말명의 신체로 삼아 무신도 위에 걸어 두었으니, 말명은 잡귀가 아니라 정식으로 모셔지는 신이었다.

조선 후기 이익의 『성호사설』은 싸움터에서 죽거나 굶주려 죽거나 난산으로 죽는 등 좋은 죽음을 얻지 못한 여러 넋이 제사를 받지 못해 요사하게 된다고 적었다. 유교 지식인들은 이런 넋을 제사 지내 줄 사람이 없는 여귀로 보아 나라와 고을의 여제로 달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민간의 손말명과 유교의 여귀는 이름과 대접이 달랐을 뿐, 제 몫의 삶을 다 살지 못한 넋이 탈을 일으킨다는 생각은 같았다.

민속학에서는 손말명을 몽달귀신, 태자귀와 함께 '사람이 채 되지 못하고 죽은' 미성년 귀신으로 묶는다. 어른이 되지 못했다는 결격이 원귀를 낳는다는 설명으로, 손말명은 혼인이라는 통과의례에 큰 무게를 두었던 사회가 낳은 귀신이라 할 수 있다. 20세기 민속 조사 보고서에도 손각시와 왕신 사례가 여럿 실려, 이 믿음이 근래까지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막는 법과 민속

처녀가 죽으면 손말명이 되지 않도록 여러 방법을 썼다. 남자 옷을 입혀 묻거나 시신을 거꾸로 묻고, 사람이 많이 오가는 네거리에 남몰래 묻기도 했다. 남자들이 그 위를 밟고 지나가게 하여 간접적으로나마 남성과 접촉하게 함으로써 못다 푼 한을 달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가장 정성스러운 방법은 죽은 뒤에 혼례를 올려 주는 사혼제다. 총각으로 죽은 몽달귀신과 짝을 지어 허수아비나 인형으로 신랑 신부를 만들어 혼례를 치르고 신방을 꾸며 준다. 강원도에서는 이를 허재비굿이라 했으며, 오늘날에도 굿당에서 치러지는 일이 있다.

이미 붙었다고 여겨지면 부모가 위협하는 주문을 외워 쫓거나 무당이 굿을 했다. 손말명에게 올리는 제물은 메밥과 냉수뿐으로 소박했는데, 이는 잔치 음식이 아니라 떠나기를 바라며 내놓는 밥이었다. 왕신으로 모신 경우에는 반대로 집안에 혼사가 있을 때마다 먼저 고하여 노여움을 사지 않도록 했다.

비슷한 존재와 구분

손말명은 손각시, 처녀귀신과 같은 존재를 가리키는 다른 이름이다. 왕신은 그 가운데 집안에 모셔진 경우를 따로 부르는 말이다. 몽달귀신은 남성 짝으로, 두 귀신은 같은 이유로 생겨나 사혼제로 함께 달래진다.

말명은 손말명과 이름이 이어지지만 무당이 정식으로 모시는 조상 신격이어서, 사람을 괴롭히는 잡귀인 손말명과는 대접이 전혀 다르다. 객귀는 죽은 장소 때문에, 손말명은 죽은 처지 때문에 생긴다는 점에서 구분되며, 여귀는 이런 넋들을 나라에서 한데 모아 제사한 이름이다. 태자귀는 어려서 죽은 아이의 넋으로, 손말명과 함께 미성년 귀신으로 묶이지만 무당이 부려 점을 치는 신으로 쓰인다는 점이 다르다.

지금의 모습

오늘날 '손말명'은 사전에는 남아 있으나 일상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 말이 되었고, 그 자리를 처녀귀신이라는 말이 차지했다. 한국 귀신의 대표 이미지가 된 흰 소복의 여자 귀신은 대부분 이 손말명 계통이다. 사전에서 '손각시'를 찾으면 '손말명'으로 가라고 안내하는 것을 보고 이 말을 처음 알게 되는 사람도 많다.

최근 옛말과 요괴 이름을 찾아 쓰는 흐름 속에서 손말명이라는 이름이 소설과 게임에 다시 등장하고 있다. 이때는 원한을 품은 여자 귀신이라는 뜻으로 넓게 쓰이며, 또래 처녀에게 붙는다는 본래 성격은 잘 다루어지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낯선 옛 이름 덕분에 처녀귀신과는 다른 분위기의 존재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이 말의 새로운 쓰임이다.

참고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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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여러 전승과 옛 기록을 바탕으로 정리한 것으로, 지역과 시대에 따라 이야기가 다를 수 있습니다. 잘못된 내용이나 보탤 전승이 있으면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