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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귀신(손각시)處女鬼神

혼기가 찬 처녀가 시집을 가지 못한 채 죽어 된 원귀로, 같은 또래 처녀에게 붙어 해를 끼치거나 억울함을 풀어 달라고 산 사람 앞에 나타난다는 한국의 대표적 귀신이다.

다른 이름: 손각시 · 손말명 · 왕신 · 처녀귀

귀신조선전국전승상 위험도 ●●●○○

정체와 생김새

처녀귀신은 혼인할 나이가 되었으나 시집을 가지 못하고 죽은 처녀의 넋이 원한을 품고 귀신이 된 것이다. 민속에서는 손각시 또는 손말명이라 부르며, 집안에 모셔 두고 달래는 경우에는 왕신이라고도 한다. 사람이 제 몫의 삶을 다 누리지 못하고 죽으면 조상신이 되지 못하고 원귀로 떠돈다는 생각에서 나온 존재로, 장가 못 가고 죽은 몽달귀신과 짝을 이룬다.

손각시는 주로 자기 또래의 혼기 찬 처녀에게 붙어 병을 일으키거나 혼사를 방해한다고 여겨졌다. 시집가지 못한 한이 시집가려는 처녀에게 옮겨 간다고 본 것이다. 집안에 왕신이 들면 온 집안이 망한다고 하여, 아예 가신으로 모시고 새 물건이 집에 들어오면 먼저 그 앞에 바쳤다.

옛이야기 속 처녀귀신은 모습이 자세히 묘사되지 않거나 죽을 때의 차림 그대로 나타난다. 오늘날 익숙한 흰 소복에 긴 머리를 풀어헤친 모습은 20세기 영화와 텔레비전에서 만들어져 굳어진 것이며, 조선 시대 여성이 입고 묻히는 옷은 오히려 연두저고리에 다홍치마 같은 고운 옷이었다.

전해 오는 이야기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밀양의 아랑 설화다. 밀양 부사의 딸 아랑이 영남루에서 통인의 흉계에 걸려 죽은 뒤, 새로 부임하는 부사마다 첫날 밤 아랑의 귀신을 보고 놀라 죽는다. 마침내 담대한 부사가 아랑의 하소연을 끝까지 듣고 범인을 잡아 벌하자 변고가 그쳤고, 밀양에는 지금도 아랑을 모신 아랑각이 있다. 억울하게 죽은 처녀가 관장 앞에 나타나 원한을 풀어 달라고 호소하는 이 구조를 '아랑형' 원혼 설화라 부른다.

고전소설 『장화홍련전』도 같은 뼈대를 가진다. 계모의 모함으로 죽은 장화와 홍련의 넋이 철산 부사 앞에 나타나고, 부사들이 잇따라 죽다가 담력 있는 부사가 사연을 듣고 원한을 풀어 준다. 처녀귀신이 반드시 사람을 해치려는 것이 아니라 억울함을 알아줄 사람을 찾는다는 생각이 여기에 담겨 있다.

마을 전설 속 처녀귀신도 많다. 경상남도 사량도 옥녀봉에는 봉우리에서 몸을 던진 옥녀의 전설이 전하며, 신부의 가마가 옥녀봉 앞을 지날 때는 가마에서 내려 걸어갔다고 한다. 시집 못 간 옥녀의 원한이 시집가는 처녀에게 옮겨 갈까 두려워한 풍속이다. 강원도 삼척의 해신당 전설은 바다에서 죽은 처녀의 넋을 달래는 이야기로, 처녀귀신이 마을신으로 모셔진 예이다.

문헌 속 기록

아랑 이야기는 19세기 야담집 『청구야담』, 『동야휘집』, 『금계필담』 등에 실려 있으며, 홍직필의 「기영남루사」에도 관련 기록이 있다. 야담집에 적힌 원귀는 대부분 여성이고, 이야기의 끝은 정의로운 사대부 남성이 원한을 풀어 주는 것으로 맺힌다. 이 점은 조선 사회에서 여성의 억울함이 스스로 풀리기 어려웠다는 사정을 보여 준다.

『장화홍련전』은 조선 후기에 널리 읽힌 국문 소설로, 평안도 철산 고을을 무대로 한다. 이 소설이 '처녀귀신이 부사 앞에 나타난다'는 장면을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20세기 들어 여러 차례 영화로 만들어지며 처녀귀신의 표준 이미지를 만드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20세기 민속 조사 보고서와 민속학 연구는 손각시를 객귀, 몽달귀신과 함께 불행하게 죽은 사람의 넋, 곧 잡귀의 하나로 분류한다. 손각시는 그중에서도 혼기 처녀에게 붙는다는 점, 그리고 집안의 신으로 모셔지기도 한다는 점에서 따로 다루어진다.

막는 법과 민속

처녀가 죽으면 손각시가 되지 않도록 여러 가지 예방을 했다. 매장할 때 남자 옷을 입혀 거꾸로 묻거나, 사람의 왕래가 잦은 네거리에 남몰래 묻기도 했다. 남성이 그 위를 밟고 지나가게 하여 간접적으로나마 남성과 접촉하게 하면 못다 푼 한을 달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가장 널리 행해진 방법은 죽은 뒤에 혼인을 시켜 주는 사혼제, 곧 영혼결혼식이다. 총각으로 죽은 몽달귀신과 처녀로 죽은 손각시를 짝지어 허수아비나 인형으로 혼례를 치르고, 이부자리를 깔아 두 인형을 눕혀 신방까지 꾸며 준다. 강원도에서는 이를 허재비굿이라 불렀으며, 오늘날에도 굿당에서 인형을 마련해 치르는 경우가 있다.

이미 손각시가 붙었다고 여겨지면 무당이 굿을 하여 떼어 냈다. 왕신을 모시는 집에서는 마루 벽에 작은 선반을 매고 오지단지나 나무 상자를 신체로 삼아, 집안에 혼사가 있을 때 반드시 먼저 고했다. 고하지 않으면 큰 화를 입는다고 믿었다.

비슷한 존재와 구분

몽달귀신은 처녀귀신의 남성 짝으로, 장가 못 가고 죽은 총각의 넋이다. 두 귀신은 같은 이유로 생겨나고 사혼제로 함께 달래지지만, 이야기의 수는 처녀귀신 쪽이 압도적으로 많다. 객지에서 죽은 객귀, 물에 빠져 죽은 물귀신은 죽은 장소와 방식 때문에 원귀가 된 경우로, 혼인 여부 때문에 생긴 손각시와 갈래가 다르다.

손말명은 손각시의 다른 이름이며 규범 표기로 쓰인다. 왕신은 손각시 가운데 특히 집안에 큰 화를 끼쳐 가신으로 모셔진 경우를 가리킨다. 구미호나 도깨비처럼 사람이 아닌 존재와 달리 처녀귀신은 언제나 '누군가의 딸'이었던 사람의 넋이라는 점에서, 두려움과 함께 연민의 대상이 되었다.

지금의 모습

1960년대 후반 영화와 1970~80년대 텔레비전 전설 드라마를 거치며 처녀귀신은 흰 소복에 긴 머리, 입가의 피라는 모습으로 굳어졌다. 연구자들은 이 형상이 일본 괴담의 유령 그림과 닮았다는 점을 들어 근대에 만들어진 전통으로 본다. 그럼에도 이 모습은 이제 한국 귀신의 대표 이미지가 되어 외국에까지 알려졌다.

현대 공포물에서 처녀귀신은 억울함을 호소하는 존재보다 복수하는 존재로 그려지는 경향이 강하다. 학교 괴담과 공포 게임에서는 밤의 복도나 화장실에 나타나는 긴 머리 여학생 귀신으로 변형되어, 몽달귀신보다 훨씬 자주 등장한다. 한편으로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밝힌다는 아랑형 이야기의 뼈대는 드라마와 웹툰에서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다.

참고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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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여러 전승과 옛 기록을 바탕으로 정리한 것으로, 지역과 시대에 따라 이야기가 다를 수 있습니다. 잘못된 내용이나 보탤 전승이 있으면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