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와 생김새
물귀신은 강이나 바다, 저수지에 빠져 죽은 사람의 넋이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그 물속에 머문다는 귀신이다. 한자로는 수귀(水鬼)라 쓰며, 국어사전에는 '물속에 있다는 귀신'이라는 뜻과 함께 '궁지에 빠졌을 때 남까지 끌고 들어가는 사람'이라는 비유 뜻이 함께 실려 있다. 무속에서는 객지에서 죽은 객귀, 시집 못 간 손각시, 장가 못 간 몽달귀신과 함께 정처 없이 떠도는 잡귀의 하나로 꼽는다.
생김새는 거의 이야기되지 않는다. 물귀신은 모습을 보이기보다 물속에서 발목을 잡는 손, 물가에서 들리는 사람 부르는 소리, 이유 없이 몸이 빨려 드는 느낌으로 존재를 드러낸다. 머리를 풀어헤친 여자나 물에 불은 얼굴로 그리는 것은 대체로 근래 매체가 덧붙인 모습이다.
물귀신의 가장 큰 특징은 산 사람을 물속으로 끌어들인다는 점이다. 국어사전에 '궁지에 빠졌을 때 남까지 끌고 들어가는 사람'이라는 비유 뜻이 실린 것도 이 때문이다. 흔히 물에 빠져 죽은 넋이 다른 사람을 끌어들여 제 자리를 채워야 물을 벗어난다고 설명하는데, 이는 중국의 수귀(水鬼)가 대신할 사람을 찾는다는 전승과 같은 생각으로, 우리 옛 채록에서 이 대목을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사람을 끌고 들어간다는 성질 때문에 위험도는 귀신 가운데서도 높은 편이다.
전해 오는 이야기
물귀신이 대신할 사람을 찾다가 마음을 돌리는 이야기로는 청나라 포송령의 『요재지이』에 실린 「왕육랑」이 잘 알려져 있다. 밤마다 어부와 술을 나누던 물귀신 왕육랑이 '내일 내 대신 들어올 사람이 온다'고 알리지만, 다음 날 물에 빠진 이가 아기를 안은 여인인 것을 보고 차마 끌어들이지 못하고 살려 보낸다. 그 착한 마음 덕에 왕육랑은 토지신이 된다. 중국 이야기이지만 물에 빠져 죽은 넋이 대신할 사람을 찾는다는 생각을 가장 또렷하게 보여 준다.
물귀신은 물속에 가만히 있다가 사람이 물에 들어오면 잡아당긴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익사 사고가 잦은 곳에는 '해마다 한 사람씩 데려간다'는 말이 붙는다. 물살이 도는 강굽이에는 날이 궂으면 물속에서 풍물 소리가 난다는 마을 전설이 전하고, 그곳에서 여러 사람이 죽었다는 내력이 함께 따라다닌다.
잡귀 때문에 병이 들었다고 여겨지면 병굿이나 푸닥거리 같은 굿으로 물리쳤는데, 물에 빠져 죽은 넋인 수귀(水鬼)도 이런 원귀의 무리에 든다.
문헌 속 기록
조선 시대 문인들은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의 넋을 원귀(寃鬼)의 한 갈래로 보았다. 제명에 죽지 못한 넋은 조상신이 되지 못하고 떠돈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었고, 물귀신은 불귀신, 굶어 죽은 아귀와 나란히 비명횡사한 넋의 대표로 거론되었다. 다만 '물귀신'이라는 우리말 표기가 언제 처음 문헌에 오르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일제강점기의 조사 보고와 20세기 민속학 연구는 물귀신을 무속의 잡귀 신앙 속에서 다루었다. 이 연구들에서 물귀신은 마을을 지키는 동신이나 집을 지키는 가신과 달리 밖에서 떠도는 외부의 신령으로 분류된다. 예방을 위한 굿과 탈이 난 뒤의 뒤처리 굿이 따로 있다는 점도 함께 지적된다.
'물귀신 작전'이라는 관용어는 20세기 후반 신문과 정치 논평에서 자주 쓰였고, 사전에는 '물귀신 심사'라는 말도 실려 있다. 물귀신이 남을 끌고 들어간다는 전승이 일상어에 그대로 남은 예이다. 귀신 자체보다 그 성질을 가리키는 말이 더 널리 살아남은 셈이다.
막는 법과 민속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이 생기면 그 넋을 건져 올려 저승으로 보내는 넋건지기굿을 했다. 지역에 따라 수망굿, 혼건지굿, 넋굿이라 부르며 전국에 두루 퍼져 있다. 동해안에서는 죽은 이가 쓰던 그릇에 쌀을 담고 종이로 만든 넋을 넣어 물가나 배 위에서 넋을 부르고, 굿을 마친 뒤 그릇 안에 머리카락이 들어 있으면 넋이 건져진 것으로 여겼다.
굿의 목적은 죽은 이를 위로하는 데만 있지 않다. 넋이 물속에 머물러 물귀신이 되는 것을 막고, 그 물귀신이 산 사람을 끌어들이는 일을 예방하려는 뜻이 컸다. 어촌에서는 철따라 물의 신에게 제사를 올려 익사 사고를 막으려 했고, 사람이 빠져 죽은 자리에는 따로 고사를 지내 넋을 달랬다.
해가 진 뒤 물에 들어가지 말라거나 물가에서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지 말라는 금기도 흔히 이야기되지만, 출처가 분명한 옛 채록은 확인하지 못했다. 이런 금기는 물귀신 신앙인 동시에 익사 사고를 막는 생활의 지혜이기도 했다.
비슷한 존재와 구분
물귀신은 죽은 사람의 넋이라는 점에서 도깨비나 이무기와 다르다. 이무기는 물속에 사는 큰 뱀으로 살아 있는 짐승이고, 도깨비는 물건에서 생겨난 요괴다. 반면 물귀신은 객지에서 죽은 객귀, 처녀로 죽은 손각시, 총각으로 죽은 몽달귀신과 같은 원귀의 무리에 속한다.
용왕은 물을 다스리는 신령이지 귀신이 아니다. 국어사전은 '용궁대감'을 '물속에 있다는 귀신'으로 풀이하여 물귀신과 같은 뜻의 말로 올려 두었다. 중국에는 물에 빠져 죽은 넋이 대신 들어올 사람을 찾는다는 수귀 전승이 뚜렷하게 남아 있어, 사람을 끌고 들어간다는 우리 물귀신 이야기와 견주어 볼 만하다.
지금의 모습
현대의 괴담에서 물귀신은 저수지, 계곡, 수영장, 아파트 물탱크로 무대를 옮겼다. 여름철 휴가지 괴담의 단골로, 발목을 잡는 손과 물 밑에서 올려다보는 얼굴이라는 두 가지 장면이 거듭 되풀이된다. 인터넷 게시판에는 물에 빠질 뻔했을 때 무언가가 발목을 붙들었다는 경험담이 해마다 여름이면 올라온다.
공포 영화와 애니메이션에서는 젖은 긴 머리의 여자 귀신 형상을 빌려 오는 경우가 많다. 공포 게임에서는 '물에 들어가면 안 된다', '물가에서 부르는 소리에 대답하지 말라'는 규칙으로 바뀌어 등장하는 경향이 있다. '물귀신 작전'이라는 말은 귀신 이야기와 상관없이 일상어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