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와 생김새
태자귀(太子鬼)는 어려서 죽은 아이의 넋이 사람에게 붙어 온갖 일을 알아맞힌다는 귀신이다. 국어사전은 태자귀를 '주로 죽은 남자아이의 귀신이나 그 귀신이 지핀 무당을 이르는 말'로 풀이하고 태주를 비슷한 말로 올려 두었으며, 무속 연구에서는 명두, 명도, 태주, 태자라고도 부른다. 새타니는 이 아이 귀신이 들린 무당을 가리키는 고유어로, 흔히 태자귀와 같은 뜻으로 쓰인다.
귀신 자체에는 정해진 모습이 없고, 목소리로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태자귀를 모신 무당은 입술을 움직이지 않은 채 배 속에서 소리를 내어, 어린아이가 지붕이나 천장 위 허공에서 가느다랗게 말하는 것처럼 들리게 한다. 휘파람이나 새소리 같은 이상한 소리가 먼저 나고 이어 아이의 말이 들린다고 하여, 새타니라는 이름을 새를 탄 이 혹은 새를 받은 이로 풀이하는 견해도 있다.
몸주신이 된 아이 넋은 무당의 입을 빌려 제 신분을 밝히는데, 왕의 자손인 공주나 태자라 하기도 하고 병으로 죽거나 굶어 죽은 넋이라 하기도 하는 등 매우 다양하다. 무당들은 불행하게 죽은 넋을 몸주신으로 모셔야 영검한 점을 칠 수 있다고 여겼다.
전해 오는 이야기
가장 오래 전해지는 이야기는 태자귀를 모신 무당의 신통한 점이다. 잃어버린 물건이 어디 있는지, 집 나간 사람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병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물으면 허공에서 아이 목소리가 또랑또랑 대답한다고 하여, 그 점이 영검하다고 여겨졌다.
태자귀가 만들어지는 방법에 관한 무서운 이야기도 있다. 욕심 많은 무당이 아이를 굶기거나 가두어 죽게 한 뒤 그 넋을 부려 점을 친다는 것으로, 이런 이야기는 태자귀 무당을 두려워하고 멀리하게 만드는 구실을 했다. 다만 이는 전승과 소문의 영역이며, 실제 무속에서는 우연히 몸에 실린 아이 넋을 몸주신으로 받아 모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밤길에 아이 목소리가 이름을 불러 대답하면 그 넋이 따라붙는다는 이야기도 요즘 글에서 보이지만, 출처가 분명한 옛 기록은 확인하지 못했다.
문헌 속 기록
『고려사』 안향 열전에는 요사한 무녀가 신을 내려 허공에서 소리를 냈다는 기록이 있다. 허공에서 말하는 귀신 점의 전통이 고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감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조선 전기 성현의 『용재총화』에는 태자에게 자주 점을 물었다는 인물의 일화가 실려 있다고 전하며, 이때 이미 태자라는 이름이 쓰였다.
『숙종실록』 1701년 9월 26일 기사는 희빈 장씨의 저주 사건을 국문하는 자리에서 태자방이라는 무녀를 언급하는데, 세속에서 자고신을 태자라 부른다는 주석이 붙어 있다. 자고는 중국에서 뒷간의 신으로 모시는 여신이므로, 조선의 태자귀를 중국의 자고 신앙과 연결해 이해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 이익의 『성호사설』과 19세기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각각 태자귀를 다룬 항목이 있어 이 귀신이 조선 특유의 풍습으로 인식되었음을 보여 준다.
송시열의 편지에는 태재라는 표기와 태재무라는 말이 보인다고 한다. 태자와 태주와 태재가 같은 말의 여러 표기임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20세기에는 이능화의 『조선무속고』와 손진태의 연구가 이를 무속의 복화술 점으로 정리했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명두 항목에서 이를 시베리아 샤머니즘의 한 갈래로 설명한다.
俗稱紫姑之神爲太子
세속에서는 자고신을 태자라 부른다.
『숙종실록』 숙종 27년(1701) 9월 26일
막는 법과 민속
태자귀는 사람을 직접 해치는 귀신이라기보다 사람에게 실려 말을 하는 귀신이므로, 막는 법도 실리지 않게 하는 데 집중된다. 다만 실리지 않게 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적은 옛 기록은 확인하지 못했다.
무속에서는 태자귀를 쫓기보다 모신다. 아이 넋을 몸주신으로 받은 무당은 신당에 그 넋의 자리를 마련하고 점을 칠 때 신을 불러 말을 받는데, 명두라는 이름이 놋쇠 거울인 무구 명두와 같은 것도 이런 사정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죽은 아이의 넋을 명두무당, 태주무당이 모시면 그 아이가 저승에서 떠돌지 않고 신이 된다고 여겨, 오히려 아이를 위한 일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태자귀 무당의 점은 신통하다고 믿어졌으나 그만큼 꺼림칙하게 여겨졌다. 조정에서는 저주 사건이 있을 때마다 이런 무녀를 조사했고, 유학자들은 요망한 소리라 하여 금하려 했다. 그런데도 태자귀 점이 오래 이어진 것은 잃어버린 것과 알 수 없는 것을 알고 싶은 마음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비슷한 존재와 구분
손말명과 몽달귀신이 혼인하지 못하고 죽은 처녀와 총각의 넋이라면, 태자귀는 그보다 어린 아이의 넋이다. 이들이 산 사람에게 원한을 풀려 드는 것과 달리 태자귀는 원한을 갚기보다 사람에게 붙어 말을 하고 점을 친다. 무당이 모시는 몸주신이 된다는 점에서 단순한 잡귀와도 다르다.
명두, 명도, 태주, 태자, 새타니는 지역과 무당에 따라 달리 부르는 같은 계열의 이름이다. 학자들은 몸주가 된 아이 넋 전반을 명두라 하고, 마마로 죽은 여자아이의 넋을 태주라 부르는 경향을 지적하지만, 실제 쓰임은 뒤섞여 있다. 태자귀가 여자아이이고 새타니가 남자아이라는 구분은 최근 글에서 보이나 옛 기록으로 확인되지는 않는다.
지금의 모습
태자귀는 2000년대 이후 한국 요괴를 소개하는 책과 인터넷 글에서 새타니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때 무당이 아이를 굶겨 만든다는 잔혹한 유래담이 함께 퍼졌다. 본래 점치는 귀신이던 태자귀가 공포물의 소재로 자리 잡은 것이다.
웹툰과 게임에서는 어린아이 모습의 귀신이 허공에서 속삭이며 사람의 비밀을 폭로하거나, 대답하는 순간 따라붙는 존재로 그려지는 경향이 있다. 목소리로만 존재를 드러낸다는 옛 특징이 현대 공포물의 장치로 잘 맞아떨어진 셈이다. 다만 이런 변형과 옛 무속의 실제 모습을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