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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사자使者 / 差使

사람이 죽으면 그 넋을 저승의 시왕 앞으로 데려간다는 저승의 심부름꾼으로, 셋이 함께 다닌다고 여겨져 초상집에서는 대문 밖에 사자상을 차려 대접한다.

다른 이름: 사자 · 차사 · 저승차사 · 사재 · 강림(제주)

신령고려전국전승상 위험도 ●●●○○
저승사자 일러스트 — 검은 갓과 도포 차림의 저승사자 셋과 두루마리를 든 까치
까치 귀신 능력 테스트에 쓴 현대 일러스트입니다. 옛 기록 속 모습을 그대로 옮긴 그림은 아닙니다.

정체와 생김새

저승사자는 사람이 죽을 때 찾아와 그 넋을 저승으로 데려가는 심부름꾼이다. 저승의 임금인 염라대왕과 열 명의 시왕이 내리는 명을 받아 이승에 내려오며, 이름 없는 잡귀와 달리 저승의 관리로서 일정한 직분을 가진 신격이다. 민간에서는 사자나 차사라 하고, 무당들은 사재라고도 부른다.

흔히 세 명이 함께 온다고 여겨졌다. 서울굿에서는 이 셋을 사재삼성이라 하여 천황사자, 지황사자, 인황사자로 부르고, 일직사자·월직사자·시직사자로 부르기도 하는데, 이때 시직사자 대신 황천차사가 들기도 한다. 다만 황해도 무당들은 이승에 올 때는 셋이지만 저승에는 일곱 사자가 있다고 하며, 절의 그림에는 두 명이나 네 명이 그려지기도 해 그 수가 고정된 것은 아니다.

오늘날 익숙한 검은 두루마기에 검은 갓, 하얗게 분칠한 얼굴은 텔레비전 드라마를 통해 굳어진 모습이다. 굿에 나오는 저승사자는 전립을 쓴 군졸 차림이고, 절의 명부전에 모신 사자상은 도끼와 두루마리를 든 관원의 모습이다. 그러나 상여를 장식하던 나무 인형 가운데 검은 옷에 검은 갓을 쓰고 호랑이를 탄 저승사자가 남아 있어, 검은 옷 이미지가 아주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전해 오는 이야기

제주도의 무속 신화 차사본풀이는 저승사자 강림의 내력을 이야기한다. 과양생이 부부에게 억울하게 죽은 세 형제의 사건을 풀기 위해 김치 원님은 강림에게 염라대왕을 잡아 오라고 명하고, 강림은 아내의 도움을 받아 저승길을 찾아가 염라대왕을 이승으로 데려온다. 사건을 밝힌 염라대왕은 강림의 넋을 저승으로 데려가 차사로 삼았다.

차사가 된 강림은 사람의 수명을 적은 적패지를 인간 세상에 전하는 일을 까마귀에게 맡겼는데, 까마귀가 이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사람이 순서 없이 죽게 되었다고 한다. 또 삼천 년을 산 동방삭을 꾀로 붙잡아 저승으로 데려가면서 차사의 자리를 굳혔다. 함경도 망묵굿의 「짐가제굿」에도 이와 비슷한 대목이 있어, 이 이야기가 제주만의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민담에는 저승사자를 잘 대접하여 살아난 사람 이야기가 많다. 정성껏 차린 밥과 짚신을 받은 사자가 인정을 베풀어 죽을 사람을 놓아주거나 다른 방도를 찾아 준다는 줄거리로, 호남의 씻김굿 무가 장자풀이에도 세 사자가 차려 놓은 밥상을 맛있게 먹는 대목이 나온다. 사자에게도 사람의 정이 통한다는 생각이 여기에 담겨 있다.

문헌 속 기록

저승사자는 불교의 시왕 신앙과 함께 자리 잡았다. 고려대장경에 실린 시왕도 판화에는 죽은 이를 시왕 앞으로 끌고 가는 사자가 새겨져 있으며, 조선 시대 절의 명부전에는 시왕과 함께 사자상을 모셨다. 불교에서는 망자의 공덕을 살피는 감재사자와 그것을 명부에 전하는 직부사자를 으뜸으로 치고, 연직·월직·일직·시직의 사직사자를 따로 두었다.

무속에서는 죽은 이를 저승으로 보내는 굿마다 사자를 부르는 거리가 있다. 제주의 시왕맞이에서는 차사본풀이를 노래하며 죽은 이를 험하게 다루지 말아 달라고 빌고, 서울과 황해도의 굿에서는 사자거리에서 무당이 사자로 분장해 나온다. 이때 사자는 우스갯소리와 풍자로 침울한 분위기를 웃음으로 바꾸는 구실을 맡는다.

조선 시대 궁중 상례에서도 침전 뒤뜰에 상을 차려 일직사자와 월직사자를 대접했다는 기록이 있다. 구한말 조선을 여행한 서양인의 여행기에도 대문 밖의 사잣밥이 적혀 있어, 저승사자 신앙이 신분을 가리지 않고 널리 퍼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저승사자는 전설과 상여소리, 장례 절차와 천도굿 등 여러 갈래에 두루 나타나, 한국인의 죽음관을 보여 주는 중요한 대상으로 꼽힌다.

막는 법과 민속

초상이 나면 대문 밖에 사자상 또는 사잣밥을 차린다. 밥 세 그릇, 짚신 세 켤레, 동전 세 닢에 술 석 잔을 곁들이는 것이 보통으로, 셋인 사자에게 먼 길의 양식과 신발, 노잣돈을 주어 죽은 이를 잘 데려가 달라는 뜻이다. 경기 남부에서는 키나 절구통 위에 밥과 나물을 올리기도 했고, 발인 때 상을 치웠다.

사자상은 반드시 마당이나 대문 밖에 차리며 방 안으로 들이지 않는다. 사자를 집 안에 들이면 나가려 하지 않고 눌러앉아, 얼마 뒤 집안에 큰 우환이 생기거나 다른 사람이 또 죽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어떤 곳에서는 사잣밥에 간장을 곁들였는데, 짠 것을 먹은 사자가 물을 찾아 되돌아올 때 죽은 이도 함께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사자에게도 착한 사자와 악한 사자가 있다고 여겨, 악한 사자가 집안에 남지 않고 떠나도록 밉더라도 박절하지 않게, 그 격에 맞게 마당에서 적당히 대접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상여가 나간 뒤 사자상을 치우는 것도 사자가 더 머물 까닭을 없애려는 뜻이었다.

비슷한 존재와 구분

저승사자는 죽은 사람의 넋이 아니라 저승의 관리라는 점에서 객귀나 손말명 같은 원귀와 다르다. 원귀는 제 한을 풀려고 사람에게 붙지만 사자는 명을 받아 정해진 사람만 데려간다. 다만 강림처럼 본디 사람이었다가 사자가 된 내력이 전하는 만큼, 사람과 신의 경계에 선 존재이기도 하다.

도깨비는 사람을 데려가지 않고 어울려 놀 뿐이며, 염라대왕과 시왕은 사자를 부리는 윗사람이다. 서양의 죽음의 신이 낫을 든 해골로 그려지는 것과 달리 저승사자는 사람 모습의 관원이며, 대접을 받으면 인정을 베풀 줄 아는 존재로 그려진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용범 교수는 저승사자가 죽음을 데려오는 존재이면서도 때로는 저승으로 향하는 망자의 심정을 대신 전해 주는 매개자 구실을 한다고 설명한다.

지금의 모습

1970~80년대 텔레비전 전설 드라마가 만든 검은 갓과 검은 두루마기의 저승사자는 이제 한국 저승사자의 표준 이미지가 되었다. 2000년대 이후 웹툰과 영화는 세 사자를 각기 개성 있는 인물로 그리며 저승의 재판을 현대의 관료 조직처럼 묘사했고, 드라마에서는 검은 정장에 모자를 쓴 세련된 모습으로 변주되었다. 도깨비와 저승사자가 한집에 사는 설정이 인기를 끌면서 저승사자는 무서운 존재보다 친근한 인물로 바뀌었다.

이런 작품들은 전통의 세 사자 구성과 사잣밥 풍속을 바탕으로 하되 이름과 성격은 창작한 것이므로, 거기 나오는 사자의 이름을 옛 전승으로 알아서는 안 된다. 게임에서는 정해진 시간에 찾아와 사람을 데려가는 존재, 또는 음식을 바치면 지나가는 존재로 규칙화되는 경향이 있다. 옛 전승의 사자가 죽은 이를 데려가는 일꾼이었다면, 지금의 사자는 산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주인공이 된 셈이다.

참고한 자료

함께 읽기

이 글은 여러 전승과 옛 기록을 바탕으로 정리한 것으로, 지역과 시대에 따라 이야기가 다를 수 있습니다. 잘못된 내용이나 보탤 전승이 있으면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