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불 위에 산이 그쳐 선 꾸밈의 괘입니다. 꾸밈은 일을 통하게 하지만 나아가는 데는 조금만 이로우며 끝내 흰 바탕으로 돌아갑니다.
아래는 리(☲, 불), 위는 간(☶, 산)입니다. 설괘전에서 리는 붙음(麗), 간은 그침(止)입니다. 주희는 안은 밝고 밖은 그쳐 문채가 밝으면서도 저마다 제 분수를 얻은 모습으로 보았습니다. 비(賁)는 꾸밈입니다. 부드러움과 굳셈이 서로 꾸며 일이 통하지만 나아가는 데는 조금만 이롭다는 판단이 괘사에 담겨 있습니다.
괘사(卦辭)
괘 전체에 붙은 글입니다. 변효가 없을 때 읽습니다.
賁,亨,小利有攸往。
비는 형통하니, 갈 곳이 있으면 조금 이롭다.
비(賁)는 꾸밈입니다. 주희는 이 괘가 손(損)괘나 기제(既濟)괘에서 변해 왔다고 보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부드러운 것은 내려와 굳센 것을 꾸미고 굳센 것은 올라가 부드러운 것을 꾸밉니다. 또 안은 밝은 리, 밖은 그치는 간이라 문채가 밝으면서도 저마다 제 분수를 지킵니다. 부드러움이 와서 굳셈을 꾸미니 양이 음의 도움을 얻고 안이 밝아 형통합니다. 굳셈이 올라가 부드러움을 꾸미고 밖에서 그치니, 나아가는 일은 조금만 이롭다고 보았습니다.
대상(大象)
『상전(象傳)』이 위아래 두 괘의 상으로 괘 전체를 풀이한 문장입니다.
山下有火,賁。君子以明庶政,无敢折獄。
산 아래에 불이 있는 것이 비이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여러 정사를 밝히되 감히 옥사를 결단하지 않는다.
산 아래의 불은 밝기는 하지만 멀리까지 비추지 못합니다. 주희는 여러 정사를 밝히는 것은 작은 일, 옥사를 판결하는 것은 큰일로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안의 밝음과 밖의 그침에서 이 상을 취했다고 보았습니다. 작은 일은 밝게 처리하되 큰 판단에는 함부로 나서지 않는 모습입니다.
효사(爻辭)
맨 아래 초효부터 맨 위 상효까지 차례로 실었습니다. 효 이름의 구(九)는 양효, 육(六)은 음효를 뜻합니다.
초구(初九)공유받은 결과에서 변한 효
賁其趾,舍車而徒。
그 발을 꾸미니, 수레를 버리고 걸어간다.
초구는 굳센 덕을 지니고 밝은 리괘의 몸에 있으면서 맨 아래에서 스스로를 꾸밉니다. 주희는 도리에 맞지 않는 수레라면 버리고 걸어가는 데 만족하는 모습으로 보았습니다. 점치는 사람도 스스로 이렇게 처신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꾸밈의 괘에서 처음 꾸미는 것이 제 발, 곧 제 걸음입니다. 무엇을 타고 가느냐보다 어떤 길로 가느냐를 먼저 고르는 효입니다.
육이(六二)공유받은 결과에서 변한 효
賁其須。
그 수염을 꾸민다.
육이는 부드러운 음으로 가운데 바른 자리에 있고 바로 위의 구삼은 굳센 양으로 바른 자리를 얻었습니다. 둘 다 응하는 짝이 없으니 육이가 구삼에 붙어 함께 움직이는데, 주희는 수염이 턱을 따라 움직이듯 하는 이 모습을 수염을 꾸미는 상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위의 굳센 양을 따라 움직이라고 풀었습니다.
구삼(九三)공유받은 결과에서 변한 효
賁如濡如,永貞吉。
꾸민 듯 윤택한 듯하니, 길이 바르고 굳게 지키면 길하다.
구삼은 양 하나가 두 음 사이에 끼어 위아래의 꾸밈을 받아 윤기가 흐르는 모습입니다. 꾸밈이 넉넉하니 좋은 때이지만 그 편안함에 빠져서는 안 되기에 오래도록 바름을 지키라는 경계가 붙었습니다. 꾸밈을 누릴 때일수록 그것에 젖어 들지 않는지가 물어집니다.
육사(六四)공유받은 결과에서 변한 효
賁如皤如,白馬翰如,匪寇婚媾。
꾸민 듯 하얀 듯하고 흰 말이 나는 듯하니, 도적이 아니라 혼인을 청하는 것이다.
육사는 아래의 초구와 서로 꾸며 주는 짝인데, 가운데의 구삼에게 가로막혀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래서 꾸밈 없이 하얗게 바랬습니다. 초구를 찾아가려는 마음은 나는 새처럼 빠릅니다. 사람이 희면 타는 말도 희다고 주희는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구삼은 굳세고 바른 양이라 해치려는 도적이 아니라 혼인을 청할 뿐이라고 했습니다.
육오(六五)공유받은 결과에서 변한 효
賁于丘園,束帛戔戔,吝,終吉。
언덕과 동산을 꾸미니, 묶은 비단이 얕고 적다. 부끄러우나 끝내 길하다.
육오는 부드러운 음으로 가운데 있으며 꾸밈의 주인입니다. 주희는 겉보다 바탕과 실질을 높이는 것이 꾸밈의 바른 도리이기에 언덕과 동산을 꾸미는 상이 나왔다고 했습니다. 음의 성질이 인색하여 예물로 내놓는 비단 묶음도 보잘것없으니 부끄러울 수 있습니다. 그래도 예는 사치하기보다 차라리 검소한 편이 낫기에 끝내 길하다고 풀었습니다.
상구(上九)공유받은 결과에서 변한 효
白賁,无咎。
흰 것으로 꾸미니 허물이 없다.
상구는 꾸밈의 맨 끝입니다. 꾸밈이 극에 이르면 오히려 근본으로 돌아가 아무 빛깔도 없는 흰 바탕이 됩니다. 주희의 풀이로는 지나침을 잘 바로잡은 것이니 허물이 없습니다. 꾸밈의 괘가 꾸미지 않은 흰빛으로 끝맺는 셈이니, 앞의 다섯 효를 거쳐 온 꾸밈이 바탕으로 돌아오는 자리입니다.
이 괘를 뽑았다면
오늘의 괘에서 이 괘가 나왔다면 변효 수에 따라 읽을 글이 달라집니다. 변효가 없으면 괘사를, 하나면 그 효의 효사를 읽고 여럿이면 주희의 『역학계몽』 규칙을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