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물던 곳을 떠나 길 위에 선 나그네의 괘입니다. 낯선 곳에서도 바름을 잠시도 놓지 않을 때 좋은 쪽으로 풀린다고 봅니다.
위는 불인 리(離, ☲), 아래는 산인 간(艮, ☶)으로, 설괘전은 리를 붙음(麗), 간을 그침(止)이라 했습니다. 주희는 산은 아래에 멈춰 있고 불은 위로 타올라 머물던 곳을 떠나 머무르지 않는 모습이니 나그네의 괘라 했습니다. 나그네 길은 늘 사는 곳이 아니라 소홀해지기 쉽지만 도는 어디에나 있으니, 그 바름을 잠시도 놓지 않아야 길하다는 것이 이 괘의 줄거리입니다.
괘사(卦辭)
괘 전체에 붙은 글입니다. 변효가 없을 때 읽습니다.
旅,小亨,旅貞吉。
려는 조금 형통하니, 나그네가 바르고 굳게 지키면 길하다.
려(旅)는 집을 떠나 객지에 머무는 것입니다. 육오가 바깥 괘에서 가운데를 얻고 위아래의 두 양을 순하게 따릅니다. 또 아래의 간은 그치고 위의 리는 밝음에 붙어 있으니 조금 형통하다고 했습니다. 나그네로서 지켜야 할 바름을 지키면 길하다는 말이 이어집니다. 주희는 나그네 길이 늘 머무는 곳이 아니라서 아무렇게나 해도 될 듯하지만 도는 있지 않은 곳이 없으니 거기에도 저절로 바름이 있고 잠시도 떠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잠깐 머무는 자리라고 해서 지켜야 할 바름이 줄어들지는 않습니다.
대상(大象)
『상전(象傳)』이 위아래 두 괘의 상으로 괘 전체를 풀이한 문장입니다.
山上有火,旅。君子以明慎用刑,而不留獄。
산 위에 불이 있는 것이 려이니, 군자는 이를 보고 밝고 삼가서 형벌을 쓰며 옥사를 오래 끌지 않는다.
주희의 풀이는 짧습니다. 형벌을 삼가기는 산처럼 무겁게 하고 옥사를 붙잡아 두지 않기는 한곳에 머물지 않는 불처럼 합니다. 산과 불이라는 두 괘의 모습이 각각 한 구절씩을 맡은 셈입니다.
효사(爻辭)
맨 아래 초효부터 맨 위 상효까지 차례로 실었습니다. 효 이름의 구(九)는 양효, 육(六)은 음효를 뜻합니다.
초육(初六)공유받은 결과에서 변한 효
旅瑣瑣,斯其所取災。
나그네가 자질구레하니, 이것이 스스로 재앙을 부르는 까닭이다.
나그네의 때에 연약한 음이 가장 낮은 자리에 있습니다. 주희는 그래서 좀스럽고 자질구레한 모습이 되었고 바로 그것이 재앙을 불러들이는 까닭이라고 보았습니다. 객지에서 작은 것에 매달려 옹졸해지는 모습을 경계하는 효입니다.
육이(六二)공유받은 결과에서 변한 효
旅即次,懷其資,得童僕貞。
나그네가 머물 곳에 이르고 노자를 품었으며, 바르고 미더운 어린 종을 얻는다.
머물 곳에 이르니 편안하고 노자를 품었으니 넉넉합니다. 바르고 미더운 어린 종까지 얻었으니 속을 일이 없고 기댈 데가 있습니다. 주희는 이를 나그네의 처지에서 가장 좋은 모습이라 했습니다. 육이가 부드럽고 순하며 가운데 바른 덕을 지녔기에 이런 모습과 점사가 나왔습니다.
구삼(九三)공유받은 결과에서 변한 효
旅焚其次,喪其童僕,貞厲。
나그네가 머물 곳을 불태우고 어린 종을 잃으니, 바르게 지켜도 위태롭다.
구삼은 지나치게 굳세고 가운데를 벗어났으며 아래 괘의 맨 위에 있습니다. 그래서 머물 곳을 태우고 어린 종까지 잃는 모습이 되었습니다. 주희는 종을 잃었다면 그 마음을 잃은 정도에 그치지 않으므로, 여기의 '바르게(貞)'는 종이 아니라 뒤의 '위태롭다'에 이어 읽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바르게 지켜도 위태로운 처지입니다.
구사(九四)공유받은 결과에서 변한 효
旅于處,得其資斧,我心不快。
나그네가 머물 곳에 깃들어 노자와 도끼를 얻었으나, 내 마음은 즐겁지 않다.
양이 음의 자리에 있고 위 괘의 아래쪽에 있으니, 부드러움을 쓰며 몸을 낮출 줄 압니다. 그래서 머물 곳과 노자와 도끼를 얻는 모습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바른 자리가 아니고 위에는 함께할 굳센 양이 없으며 아래로는 연약한 초육과 응할 뿐이라 마음에 즐겁지 않은 데가 있다고 주희는 풀었습니다. 갖춘 것과 마음이 편한 것이 같지 않은 장면입니다.
육오(六五)공유받은 결과에서 변한 효
射雉,一矢亡,終以譽命。
꿩을 쏘아 화살 하나를 잃으나, 마침내 기림과 명을 얻는다.
꿩은 빛나는 무늬를 지닌 새로 리의 모습입니다. 육오는 부드럽고 순하며 밝고 가운데를 얻은 리의 주인이라, 이 효를 얻으면 꿩을 쏘는 모습이 됩니다. 화살 하나를 잃는 손실은 있지만 잃는 것이 많지 않고 마침내 기림과 명(命)을 얻는다고 주희는 보았습니다.
상구(上九)공유받은 결과에서 변한 효
鳥焚其巢,旅人先笑後號咷。喪牛于易,凶。
새가 제 둥지를 태우니, 나그네가 먼저 웃고 뒤에는 울부짖는다. 소를 쉽사리 잃으니 흉하다.
상구는 지나치게 굳센 양으로 나그네 괘의 맨 위, 리의 끝에 있습니다. 주희는 이를 교만하여 순하지 않은 것, 곧 흉함으로 가는 길이라 보았습니다. 둥지를 태우는 새와 웃다가 울부짖는 나그네와 잃어버린 소가 모두 그 교만에서 나온 모습입니다. 객지일수록 높은 데서 뻗대지 말라는 경계로 읽힙니다.
이 괘를 뽑았다면
오늘의 괘에서 이 괘가 나왔다면 변효 수에 따라 읽을 글이 달라집니다. 변효가 없으면 괘사를, 하나면 그 효의 효사를 읽고 여럿이면 주희의 『역학계몽』 규칙을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