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불이 제자리를 얻어 일이 이미 이루어진 괘입니다. 이룬 뒤일수록 처음의 삼감을 놓지 말라는 경계가 담겨 있습니다.
위는 물인 감(坎, ☵), 아래는 불인 리(離, ☲)로, 설괘전은 감을 빠짐(陷), 리를 붙음(麗)이라 했습니다. 주희는 물과 불이 서로 사귀어 저마다 쓰임을 얻고 여섯 효가 모두 바른 자리에 있으니 일이 이미 이루어진 괘라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괘와 여섯 효의 말에 모두 경계의 뜻이 있다고 보았으니, 이룬 때일수록 삼가야 한다는 것이 이 괘의 줄거리입니다.
괘사(卦辭)
괘 전체에 붙은 글입니다. 변효가 없을 때 읽습니다.
既濟,亨小,利貞。初吉終亂。
기제는 조금 형통하니, 바르고 굳게 지킴이 이롭다. 처음은 길하나 끝은 어지럽다.
기제(既濟)는 일이 이미 이루어진 것입니다. 주희에 따르면 물과 불이 서로 사귀어 저마다 쓰임을 얻었고 여섯 효가 하나같이 제 바른 자리에 있으니 이미 건넌 괘입니다. 원문의 '형통함이 작다(亨小)'도 '조금 형통하다(小亨)'로 읽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 이 괘와 여섯 효의 점사에는 대체로 경계의 뜻이 담겨 있는데, 때가 그러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처음은 길하나 끝은 어지럽다는 말도 그 경계의 하나입니다. 다 이루었다고 여길 때가 오히려 살필 것이 많은 때입니다.
대상(大象)
『상전(象傳)』이 위아래 두 괘의 상으로 괘 전체를 풀이한 문장입니다.
水在火上,既濟。君子以思患而豫防之。
물이 불 위에 있는 것이 기제이니, 군자는 이를 보고 환난을 생각하여 미리 막는다.
물이 위에 있고 불이 아래에 있어 서로 쓰임을 이루는 모습입니다. 주희는 이 구절에 따로 풀이를 달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 괘의 말이 모두 경계를 담고 있다고 한 괘사의 주석과 흐름이 같습니다. 이루어진 때에 앞으로 올 근심을 미리 헤아리는 것이 군자의 일입니다.
효사(爻辭)
맨 아래 초효부터 맨 위 상효까지 차례로 실었습니다. 효 이름의 구(九)는 양효, 육(六)은 음효를 뜻합니다.
초구(初九)공유받은 결과에서 변한 효
曳其輪,濡其尾,无咎。
바퀴를 끌어당기고 꼬리를 적시니 허물이 없다.
바퀴는 아래에 있고 꼬리는 뒤에 있으니 모두 맨 아래 효의 모습입니다. 바퀴를 끌어당기면 수레가 앞으로 나가지 않고 꼬리를 적시면 여우가 물을 건너지 못합니다. 이미 이룬 때의 처음에 이렇게 삼가고 조심하는 것이 허물없는 길이라고 주희는 보았습니다. 서두르지 않는 첫걸음이 이 효의 자리입니다.
육이(六二)공유받은 결과에서 변한 효
婦喪其茀,勿逐,七日得。
부인이 수레의 가리개를 잃으니, 쫓지 말라. 이레면 얻는다.
육이는 밝고 중정한 덕으로 위의 굳세고 중정한 임금인 구오와 응하니 뜻을 펼 만합니다. 그러나 구오가 이미 이룬 때에 있어 몸을 낮춰 어진 이를 쓰지 못하니, 부인이 수레의 가리개(茀)를 잃은 모습이 되었습니다. 가리개를 잃었으니 나다닐 수단을 잃은 셈입니다. 그래도 중정한 도는 끝내 버려지지 않아 때가 지나면 행해지므로, 쫓지 않아도 저절로 얻는다고 경계했습니다.
구삼(九三)공유받은 결과에서 변한 효
高宗伐鬼方,三年克之,小人勿用。
고종이 귀방을 쳐서 세 해 만에 이기니, 소인은 쓰지 말라.
구삼은 기제의 때에 굳센 양으로 굳센 자리에 있어 고종(高宗)이 귀방(鬼方)을 치는 모습이 되었습니다. 세 해 만에 이겼다면 오래 걸린 뒤에야 이긴 것이니, 가볍게 움직이지 말라는 경계라고 주희는 풀었습니다. 소인을 쓰지 말라는 말은 지수사(地水師) 상육과 같은 방식으로 읽는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룬 뒤의 큰일일수록 쉽게 보지 않는 태도를 생각하게 합니다.
육사(六四)공유받은 결과에서 변한 효
繻有衣袽,終日戒。
새어 젖는 데에 헌 옷가지를 갖추고, 하루 종일 경계한다.
이미 이룬 때에 부드러운 음이 부드러운 자리에 있으니, 미리 갖추어 두고 조심할 줄 아는 효입니다. 주희는 정이(程頤)의 말을 끌어와 첫 글자는 '젖다(濡)'로 읽어야 하고 헌 옷가지(衣袽)는 배의 틈으로 새는 물을 막는 데 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탈이 없을 때 이미 구멍 막을 것을 곁에 두는 모습입니다.
구오(九五)공유받은 결과에서 변한 효
東鄰殺牛,不如西鄰之禴祭,實受其福。
동쪽 이웃이 소를 잡는 것이 서쪽 이웃의 약제(禴祭)만 못하니, 서쪽 이웃이 실로 그 복을 받는다.
동쪽은 양이고 서쪽은 음입니다. 주희는 구오가 높은 자리에 있으나 때가 이미 지났으니, 아래에 있으면서 이제 막 때를 얻는 육이만 못하다는 뜻으로 읽었습니다. 또 문왕(文王)과 주(紂)의 일에 해당한다고 보았습니다. 괘사의 '처음은 길하나 끝은 어지럽다'도 같은 뜻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제사의 성대함보다 때를 얻었는지가 더 무겁습니다.
상육(上六)공유받은 결과에서 변한 효
濡其首,厲。
머리를 적시니 위태롭다.
연약한 음이 기제의 끝, 험한 감괘의 맨 위에 자리합니다. 주희는 이를 여우가 물을 건너다 머리까지 적시는 모습으로 보았습니다. 이 효를 얻고도 경계하지 않으면 위태로움으로 가는 길이라고 했으니, 위태롭다는 말은 삼감을 놓친 경우에 붙은 판단입니다.
이 괘를 뽑았다면
오늘의 괘에서 이 괘가 나왔다면 변효 수에 따라 읽을 글이 달라집니다. 변효가 없으면 괘사를, 하나면 그 효의 효사를 읽고 여럿이면 주희의 『역학계몽』 규칙을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