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와 생김새
강철이는 지나가기만 하면 풀과 나무, 곡식이 모두 말라 죽는다는 전설 속의 악독한 용이다. 국어사전은 이렇게 풀이하며 한자로 强鐵이라 적는다. 지역에 따라 강철, 깡철이, 꽝철이라 부르고, 옛 기록에는 江鐵이나 罡鐵로 적은 예도 있는데, 본디 우리말 이름을 소리 나는 대로 옮기다 보니 표기가 갈린 것으로 보인다.
생김새는 기록마다 조금씩 다르다. 소를 닮았으나 얼굴과 살갗은 용 같다고도 하고, 뿔이 있고 온몸에 털이 나 누런 기운을 띤다고도 하며, 망아지처럼 생겼다는 기록도 있다. 몸에서 이상한 연기와 바람을 내뿜어 폭풍과 번개, 우박을 일으킨다고 전하고, 근래 민속에서는 날아갈 때 불덩이처럼 보인다고 한다.
강철이의 힘은 크게 두 갈래로 나타난다. 하나는 폭우와 우박, 번개로 다 익은 곡식을 쓸어 버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뜨거운 기운으로 가뭄을 불러 들판을 태우는 것이다. 서로 반대되는 재앙이 한 괴물에게 붙은 까닭은, 강철이가 어떤 구체적인 짐승이라기보다 농사를 망치는 재앙 그 자체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된다.
전해 오는 이야기
가장 유명한 것은 '강철이 간 데는 가을도 봄'이라는 속담이다. 강철이가 지나간 곳은 거둘 것이 아무것도 없어 마치 싹도 트지 않은 초봄 같다는 뜻으로, 다 되어 가던 일이 방해자나 불운 때문에 망가지는 경우를 이른다. '강철이 가을'이라는 말은 그런 극심한 흉년을 가리킨다.
경상북도 청도 대비사에는 꽝철이의 내력을 말하는 전설이 있다. 절에 살던 사미승이 실은 이무기였는데, 심한 가뭄에도 그의 채소밭만 마르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주지가 몰래 지켜보다가 헛기침을 했다. 여의주를 물고 막 용이 되려던 사미승은 놀라 여의주를 삼켜 버렸고, 속에서 불이 나 흉측한 꽝철이로 변했다. 화가 난 꽝철이는 큰 꼬리로 산허리의 바위를 깨뜨리고 밀양 호박소로 떠났는데, 억산의 깨진 바위가 그 흔적이라 전한다.
조선 후기 기록에는 목격담도 여럿 남아 있다. 철원의 못에 사는 괴물을 없애려고 관원들이 불붙은 장작을 던지자 말 같은 짐승이 튀어나오며 우박을 흩뿌렸다는 이야기, 계룡산에서 소와 말과 용을 섞어 놓은 듯한 짐승을 보았다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1957년 신문에도 경남 양산의 큰물 속에서 깡철이 두 마리를 보았다는 마을 사람들의 말이 실렸다.
문헌 속 기록
강철이가 처음 보이는 문헌은 1614년 이수광의 『지봉유설』이다. 이수광은 '강철이 가는 곳은 가을도 봄 같다'는 속담을 소개하고, 근처 몇 리의 풀과 나무를 태워 죽이는 괴물이라는 시골 노인의 말을 전하면서 중국 『산해경』의 괴물 비(蜚)와 같은 것이 아닌가 추측했다. 속담이 먼저 있고 그 뜻을 묻는 데서 기록이 시작된 셈이니, 강철이는 처음부터 이야기보다 말로 먼저 퍼진 괴물이었다.
18세기에는 기록이 부쩍 늘었다. 이익의 『성호사설』은 폭풍우로 농사를 망치는 강철을 중국의 독룡에 견주었고, 김이만의 『학고집』은 1742년에 뿔 있고 털 난 누런 짐승이 번개와 폭우를 몰고 왔다고 적었다. 신돈복의 『학산한언』은 계룡산과 철원의 목격담을 실었으며, 이덕무의 『앙엽기』는 김포 늪에 사는 망아지 같은 짐승이 가뭄을 부른다고 하고 '용이 되려다 못 된 것이 강철'이라는 말을 남겼다.
박지원의 『열하일기』에는 1780년 청나라 사람과 필담을 나누며, 그들이 말하는 화룡이나 한발 같은 것을 조선에서는 강철이라 부른다고 설명한 대목이 있다. 이처럼 조선 학자들은 강철이를 저마다 다른 중국 괴물에 견주었는데, 이는 거꾸로 강철이가 중국 문헌에 없는 조선 고유의 괴물임을 보여 준다. 17세기 초부터 근래의 신문 기사까지 기록이 끊이지 않는 점도 강철이 전승의 생명력을 말해 준다.
막는 법과 민속
경북 남부와 경남 지역에는 가뭄이 들면 '꽝철이 쫓기'를 하는 풍속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산 능선을 따라 다니며 꽹과리와 징을 요란하게 쳐서 가뭄을 부르는 꽝철이를 몰아내는 것으로, 일종의 기우제다. 꽝철이는 코에 물이 들어가면 사라진다는 말도 전한다.
옛 기록 속 사람들은 강철이가 산다는 못에 불붙은 장작을 던져 쫓으려 했으나 오히려 우박을 맞았다. 강철이는 사람이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하는 재앙으로 여겨졌으며, 그래서 '강철이 가을'이라는 말은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흉년의 다른 이름이 되었다. 그런 만큼 꽝철이 쫓기는 괴물을 없애는 의례라기보다, 가뭄에 지친 마을 사람들이 함께 소리를 내며 비를 비는 의례였다고 볼 수 있다.
비슷한 존재와 구분
강철이는 흔히 이무기의 한 갈래로 설명된다.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가 심술로 물을 다스려 홍수와 가뭄을 부른다면, 강철이는 그 실패가 몸 안의 불이 되어 밖으로 터져 나온 존재다. 근래 민속에서는 꽝철이를 용이 되려다 떨어진 것이라 부르지만, 17세기 기록에는 이무기와의 연결이 아직 뚜렷하지 않다.
용은 비를 내려 농사를 돕는 신령이고 강철이는 농사를 망치는 요괴라는 점에서 둘은 정반대다. 쇠를 먹으며 나라를 어지럽히는 불가사리와는 재앙의 크기가 비슷하나, 불가사리가 쇠붙이를 노리고 강철이는 곡식과 날씨를 노린다. 중국의 가뭄 귀신 한발이나 독룡은 조선 학자들이 비교 대상으로 든 것일 뿐 같은 존재는 아니다.
지금의 모습
강철이는 오랫동안 이무기의 그늘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옛 기록 속 괴물을 소개하는 책과 글이 늘면서 조선 고유의 재해 괴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폭풍과 우박을 몰고 다니는 거대한 짐승이라는 설정은 괴수물에 어울려, 웹툰과 게임에서 자연재해를 일으키는 우두머리 괴물로 활용되는 경향이 있다. 국가유산 관련 잡지에서도 강철이를 옛 전설에서 오늘의 콘텐츠로 이어지는 괴물로 소개한 바 있다.
영화에서는 이름만 빌려 용이 되지 못한 뱀 괴물로 그리는 예가 많아, 소나 말을 닮았다는 옛 기록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한편 '강철이 간 데는 가을도 봄'이라는 속담은 사전에 살아남아, 괴물의 정체를 몰라도 그 말만은 여전히 쓰이고 있다. 기후가 변하며 가뭄과 폭우가 잦아진 요즘, 재해를 한 몸에 지닌 이 괴물은 다시 읽을 만한 옛이야기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