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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사리不可殺伊 / 不可殺爾

쇠붙이를 먹을수록 몸집이 불어나고 불로도 칼로도 죽일 수 없다고 하여 이름 붙은 고려 말 전설의 괴물로, 바늘 하나에서 시작해 온 나라의 쇠를 삼켰다고 전한다.

다른 이름: 불가살이 · 불가살 · 송도 말년의 불가사리

요괴조선전국전승상 위험도 ●●●●○
불가사리 일러스트 — 쇠붙이를 먹는 불가사리와 그 머리 위에 앉은 까치
까치 귀신 능력 테스트에 쓴 현대 일러스트입니다. 옛 기록 속 모습을 그대로 옮긴 그림은 아닙니다.

정체와 생김새

불가사리는 쇠를 먹고 사는 상상의 짐승이다. 이름은 '죽일 수 없다'는 뜻의 한자 불가살(不可殺)에 우리말 접미사 '이'를 붙여 적은 데서 왔다. 처음에는 바늘 하나를 삼킬 만큼 작았으나 쇠붙이를 먹을수록 몸집이 불어나, 나중에는 온 나라의 농기구와 무기까지 먹어 치웠다고 전한다. 칼로 베어도 불로 태워도 죽지 않아 사람들이 어찌할 수 없었던 존재다.

옛 기록은 생김새를 자세히 적지 않았다. 19세기 학자 조재삼은 쇠를 거의 다 먹어 버린 괴물이라고만 했고, 비슷한 시기의 다른 글에서는 황소만 한 검은 짐승이 숨을 쉴 때마다 불꽃을 뿜는다고 했다. 1921년에 나온 소설 『송도말년불가살이전』의 표지는 불가사리를 코끼리보다는 소와 돼지를 닮은 짐승으로 그렸다. 곰과 코끼리, 소, 사자 같은 여러 짐승을 섞은 묘사는 본래 중국 문헌이 맥(貘)을 설명하던 방식이며, 오늘날 널리 알려진 곰의 몸에 코끼리 코를 한 형상이 언제 굳어졌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름 풀이는 두 갈래다. 하나는 글자 그대로 '죽일 수 없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불로는 죽일 수 있다(火可殺)'는 뜻으로 읽어 쇠를 먹는 성질과 불을 짝지은 것이다. 쇠와 불을 서로 이기는 관계로 보는 오행 사상이 뒤의 풀이를 뒷받침한다.

전해 오는 이야기

가장 널리 알려진 줄거리는 고려 말 개경, 곧 송도를 무대로 한다. 나라에서 중을 모두 잡아들이라 하자, 쫓기던 중이 누이의 집 벽장에 숨어 지내며 밥풀로 괴상한 짐승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늘과 가재도구, 농기구 같은 쇠붙이를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우며 점점 커져 마침내 온 나라를 헤집고 다녔다는 것이다. 각편에 따라서는 중을 잡아들이라고 명한 사람이 이성계로 특정되기도 한다.

한국구비문학대계에는 불가사리 이야기가 열아홉 편가량 채록되어 있다. 억눌린 사람이 돼지나 개미, 쥐, 말 같은 모양으로 무엇인가를 빚으면 그것이 쇠를 먹으며 거대해진다는 뼈대는 같고, 결말에서는 대개 불에 태워져 없어진다. 신돈이나 이성계, 서산대사 같은 역사 인물이 등장하는 각편도 있다.

이 이야기는 '송도 말년의 불가사리'라는 속담을 낳았다. 몹시 무지하고 못된 짓을 하는 사람, 또는 어떤 방법으로도 막을 수 없는 골칫거리를 빗대는 말이다. '불가사리 쇠 집어먹듯'이라는 표현도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우는 모습을 이른다.

문헌 속 기록

불가사리를 적은 옛 문헌으로 가장 자주 인용되는 것은 19세기 조재삼의 『송남잡지』다. 민간에 전하기를 송도 말년에 괴물이 나타나 쇠붙이를 거의 다 먹어 버렸고, 죽이려 해도 죽일 수 없어 불가살이라 불렀다는 내용이다. 이야기의 배경이 고려 말이라 해도 기록 자체는 조선 후기의 것이므로, 불가사리 전승이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학자들은 중국 『산해경』에 나오는 쇠와 구리를 먹는 짐승 맹표, 그리고 그와 같은 것으로 여겨진 맥(貘)과 불가사리의 관련을 이야기한다. 『본초강목』은 맥의 가죽을 깔고 자면 나쁜 기운을 물리친다고 하여 벽사의 짐승으로 보았는데, 불가사리가 나쁜 기운을 막는 서수로 쓰인 배경을 여기서 찾기도 한다. 한편 불경 『구잡비유경』에 나오는 화모(禍母) 이야기와 닮았다는 견해도 있다.

1921년 현병주가 지은 소설 『송도말년불가살이전』은 흩어진 전승을 하나의 긴 이야기로 엮은 작품이다. 이 소설에서 불가살이는 고려 말과 조선 초를 배경으로 활약하며 나라 밖까지 나아가 쇠를 먹어 치운다. 오늘날 알려진 불가사리 이야기의 많은 부분이 이 소설을 거치며 굳어졌다.

막는 법과 민속

이야기 속 불가사리는 활이나 칼로는 죽지 않는다. 불로 태우려 하자 온몸이 불덩이가 되어 집들로 날아들어 마을을 태웠다는 각편이 있어, 태우는 일조차 위험한 것으로 그려진다. 그래도 한국구비문학대계의 각편은 대개 불에 태워 없애는 것으로 끝나며, 중이 부적을 붙이거나 지팡이를 휘둘러 먹은 쇠붙이를 모두 쏟아 내게 하는 각편도 있다.

반대로 불가사리는 나쁜 기운을 막아 주는 짐승으로 궁궐과 집을 장식하는 데 쓰였다. 경복궁 자경전 십장생 굴뚝의 맨 아랫부분에는 불가사리로 알려진 서수가 놓여 악귀를 막는 구실을 하고, 교태전 뒤 아미산 굴뚝의 아랫단에도 벽사의 짐승이 새겨져 있다. 쇠를 먹는 무서운 괴물이 한편으로는 재앙을 대신 먹어 주는 수호 짐승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비슷한 존재와 구분

불가사리는 사람의 넋이 아니라 물건에서 생겨난 짐승이라는 점에서 도깨비와 닮았으나, 도깨비가 사람과 어울리는 데 비해 불가사리는 말없이 쇠를 먹으며 커질 뿐이다. 물속에 살며 용이 되려는 이무기나 지나는 곳마다 가뭄을 부르는 강철이도 나라를 어지럽히는 괴물이지만, 이들은 물과 날씨에 매인 존재이고 불가사리는 쇠와 불에 매인 존재다. 또 이무기와 강철이가 사람 손을 떠난 자연의 괴물이라면, 불가사리는 사람이 밥풀로 빚어 낸 괴물이라는 점이 다르다.

바다에 사는 별 모양 동물 불가사리는 이름만 같을 뿐 전설의 짐승과 직접 관계가 없으며, 두 이름이 어떻게 이어지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중국의 맥은 꿈을 먹는 짐승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쇠를 먹는다는 점만 불가사리와 겹칠 뿐 나라를 망하게 한다는 이야기는 없다. 두 짐승은 벽사의 서수라는 쓰임에서 만난 것이지 같은 존재라고 보기는 어렵다.

지금의 모습

불가사리는 20세기 들어 소설과 만화, 영화의 소재로 거듭 되살아났다. 1962년 남한에서, 1985년 북한에서 각각 불가사리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만들어졌고, 시대에 따라 억울하게 죽은 이의 원혼, 억눌린 농민을 돕는 힘 같은 식으로 성격이 달라졌다. 어린이 그림책에서는 쇠를 먹는 귀여운 괴물로 그려지는 일이 많다.

최근에는 죽지 않는 존재라는 이름의 뜻을 살려 불사의 인물이나 저주받은 괴물로 그리는 드라마와 웹툰이 잇따랐다. 게임에서는 쇠를 먹을수록 커지는 성질을 규칙으로 옮겨, 무기를 빼앗기거나 쇠붙이를 숨겨야 하는 장치로 활용하는 경향이 있다. 뿔 없는 곰 같은 생김새는 인형과 캐릭터 상품으로도 만들어져, 무서운 괴물이 친근한 모습으로 바뀌어 가는 중이다.

참고한 자료

함께 읽기

이 글은 여러 전승과 옛 기록을 바탕으로 정리한 것으로, 지역과 시대에 따라 이야기가 다를 수 있습니다. 잘못된 내용이나 보탤 전승이 있으면 알려주세요.